불합격 회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불합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같은 실패를 겪었거나 면접에서 말이 길어지는 개발자라면, 필자가 원인을 어디까지 따라갔고 무엇을 바꾸기로 했는지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잘한 점보다 실패한 점을 먼저, 더 길게 쓴다.
최근 필자가 무척 중요하게 여긴 두 과정이 끝났다. 결과는 둘 다 불합격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그 안에서 실패한 것과 배운 것이 분명히 있어서, 흐려지기 전에 적어 두려고 한다.
길어지는 답변
먼저 눈에 보인 실패는 말하기였다. 대화에서 필자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력서에 적힌 작업 하나를 두고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해보자.
"어떤 이유로 이런 개선을 진행하셨나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그 작업을 왜 했고 어떻게 개선했는지를 머릿속에서 이야기로 엮는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질문은 이유(Why)와 방법(How)을 묻고 있다. 그러니 "이런 이유로 이렇게 개선했습니다"라고 두괄식으로 답하면 된다. 설명이 부족해 보이면 선택지는 둘이다. 그 결론을 받치는 근거를 한 번 더 덧붙이거나, 상대가 궁금한 부분을 꼬리 질문으로 묻게 두는 것이다.
필자는 이 두 번째 단계에서 무너졌다. 어떤 작업도 한두 줄로 끝나지 않는다. 해결 방법이 여럿이었고, 트레이드오프를 따지다 잘못 고쳐 보기도 했고, 그 끝에 결과가 나왔다. 그 모든 것을 짧은 질문 하나에 담으려다 보니 답이 어느새 필자 혼자의 연설이 됐다. 듣는 사람은 아마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필자가 끌리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혼자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질문에 답하면서 표정과 태도까지 필자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엔지니어로서 자기 작업을 설명하는 자리에 서면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설명할 재료의 부족
답이 길어진 이유를 더 따라가 보니 말하는 형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명할 재료가 머릿속에 단단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 이런 때 답이 흔들렸다.
- 오래전에 한 작업이라 기억이 흐린데 그것을 어필하려 할 때
-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조각이 합쳐진 결과물을 설명하려 할 때
- 필자의 문제 해결 과정을 기술적으로 풀어낼 관점이 부족할 때
이력서와 기술 명세서는 한 사람의 긴 시간을 요약한 문서이고, 항목 하나마다 나눌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그 안에는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는 항목이 있으면 안 된다. 협업이 기본인 직군에서 온전히 혼자 한 작업은 드물다. 그렇다면 필자가 맡은 범위와 도움받은 범위를 문서에서부터 분명히 나누고, 말할 때도 그 경계를 지켜야 한다.
재료가 부족해진 데에는 최근의 작업 방식도 한몫했다고 본다. 예전에는 문제 하나를 풀 때 허탕을 많이 쳤다. 번역기를 돌리고, 검색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여러 관점을 머릿속과 글로 정리해 나갔다. 지금은 "해줘"라고 말하면 AI 가 판단부터 결과까지 알아서 내놓는다.
그렇다면 필자는 그 중간 과정을 열어 보고 하나씩 끊어 읽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성과와 결과가 중요하다 보니 과정은 핵심만 훑거나 결과만 가져왔다. 그렇게 넘긴 과정은 면접에서 꺼낼 수 있는 재료로 남지 않았다.
AI 가 이만큼 발전했으니 이런 과정은 이제 필요 없다고, 그 시간에 성과를 더 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필자는 스스로 거쳐 온 과정과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선택을 해야 한다. 과정 없이 쌓은 성과는 숫자는 커져도 속이 빈 껍데기일 수 있다. 더 많이 해내고 더 많이 보여주려고 과정을 줄였던 시간이 결국 필자에게 불리하게 돌아왔다. 이번 불합격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꿀 것은 이렇다. AI 가 낸 결과를 받기 전에 과정을 끝까지 읽는다. 문제를 필자의 말로 다시 정리하고, 그 해석이 맞는지 직접 확인한다. 이 검증을 거친 작업이어야 기술적인 논의를 할 수 있고, 면접에서도 두괄식 한 문장 뒤에 받칠 근거가 생긴다.
측정해 본 집중력
과정을 끝까지 읽지 못한 데에는 더 아래의 이유가 있었다. 집중력이다. 이번 실패를 돌아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이것이다.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싶어 평범한 주말에 뽀모도로를 해봤다. 40분 작업과 5분 휴식을 한 사이클로 잡고 여섯 번 돌렸다. 측정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화면을 녹화해 두고 나중에 돌려 봤다.
결과는 이랬다. 작업 시간 중 의도와 상관없이 메신저, 웹사이트, 휴대폰으로 빠진 것이 16번이었다. 40분마다 두세 번씩 딴 데로 샌 셈이다. 휴식은 정해진 5분을 넘긴 시간만 합쳐 7분 41초였다. 쉴 때마다 1분 남짓씩 더 쉰 것이다.
숫자를 보고 나니 평소에 느끼던 것들이 겹쳐 보였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논점을 놓치고, 이동하는 동안 쇼츠와 노래를 쉴 새 없이 넘긴다. 필자는 AI 에 많은 일을 맡기면서 집중력이 무너졌다고 의심한다. AI 를 쓰기 전과 비교해 잰 적은 없으니 확인한 사실은 아니다. 다만 결과를 기다리고, 훑고, 다음 요청을 보내는 짧은 호흡에 익숙해진 것은 분명하다.
집중력이 낮으니 여러 에이전트를 돌려도 그 결과물을 제대로 읽기 어려웠다. 쉽게 지치고 판단이 흐려졌다. 대화에서도 상대에게 집중하기보다 필자의 생각 안에 머물렀다. 앞에서 말한 길어지는 답변도 여기서 멀지 않다고 본다.
진용진 채널에서 공시생의 집중력을 다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기억에 남은 내용은 이렇다. 사람들은 자기 집중력을 실제보다 높게 믿고, 그래서 처음부터 한 시간이 넘는 목표를 세웠다가 지키지 못하고 포기한다는 것이다.
필자 주변에는 같이 시작했지만 기술적 이해가 더 깊은 분들이 있다. 더 똑똑하고 성실하고, 공부하기 좋은 조건을 더 갖췄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차이는 집중과 몰입이다.
그래서 거창한 계획 대신 짧은 집중을 성공하는 데서 시작하려고 한다. 에이전트를 여러 개 돌리더라도 한 시간에는 한 가지만 본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다시 재서 16번과 7분 41초가 줄어드는지 확인한다.
지켜낸 것
실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은 괜찮았던 것도 적어 둔다.
퇴근 후 공부 습관
퇴근하고 공부하는 일은 역시 힘들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공부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기까지는 더 그렇다.
한 달 반 동안 공부를 가장 앞에 두었다. 술자리와 약속을 줄이고 매일 스파크플러스 라운지에 가서 공부했다. 유혹이 많았지만 대부분 뿌리쳤다. 덜 피곤하려고 탄수화물을 줄였더니 살이 빠지고 컨디션이 나아졌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습관도 생겼다.
앞에서 집중력이 무너졌다고 썼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리에 앉는 습관은 만들었지만, 앉은 시간을 온전히 쓰는 힘은 아직 부족했던 것이다. 다음에 고칠 것이 그 부분이다.
남의 코드에 묻는 왜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코드를 볼 때 큰 감흥이 없었다. 리뷰도 대개 이해가 안 가는 로직을 묻는 데서 그쳤다. 컨벤션에 맞지 않거나 개선할 곳이 보여도 가볍게 알리는 정도였다.
올해는 코드를 쓰는 필자만의 기준을 갖자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관점의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기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논리가 생겼고, 남의 코드를 볼 때 의문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아직 그 시선이 필자 자신의 작업까지는 충분히 닿지 않는다. 앞에서 쓴 실패가 바로 그 부분이다. 문제를 보고 지나치지 않고, 과정마다 "왜"를 물으며 이해하는 습관을 필자의 작업에도 적용해 나가려 한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이번에 공부하며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자가 속한 공부 모임의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그 에너지를 나눠 준다. 필자가 놓친 부분을 적극적으로 짚어 주고 관심을 보여 준다.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마다 배울 점이 많다.
다시 준비하며
돌아보면 이번 불합격은 하나의 흐름이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고, 과정을 건너뛰니 설명할 재료가 얇아졌고, 재료가 얇으니 답이 길어졌다. 그래서 다시 준비할 것도 그 순서를 거꾸로 밟는다. 짧은 집중부터 되찾고, AI 가 낸 결과의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그렇게 쌓은 재료로 결론부터 말하는 연습을 한다.
혹시 비슷한 자리에서 말이 길어졌던 경험이 있다면, 말하는 법을 고치기 전에 그 작업의 과정을 지금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면 좋겠다. 필자에게는 거기서부터가 진짜 원인이었다.